‘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
또는
‘하늘 밖에 하늘이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차원(次元)이 다르다’는 뜻이다.

2차원의 평면에 속해 있고
2차원의 평면이
3차원의 입체에 속해 있지만
1차원이 2차원을
2차원이 3차원을
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듯
같은 세계에 있으면서
다른 세계에 있는
함께 있으나
함께 있지 않는
오묘(奧妙)한 관계성이 존재한다.
이 섭리를 사람에게 적용하면
같은 시간(時間)이 흐르지만
속력(速力)이 다르고
같은 공간(空間)에 거하지만
경지(境地)가 다르다.
같은 육신(肉身)이지만
기량(技倆)과 강건(强健)과 구조(構造)가 다르고
같은 정신(精神)이지만
재량(裁量)과 정직(正直)과 자유(自由)가 다르다.
잔혹하게도
이 ‘차이’(差異)는
차원 간의 차이처럼
무한(無限)이
그리고 영원(永遠)이
중간(中間)에서 사이를 갈라 놓은 것처럼
한 평생을 할애해도
몇 세대를 걸쳐도
도저히 좁혀지지 않을 수 있다.
분명 나와 같은 사람인데
서로의 삶이
범접할 수 없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좋게든 나쁘게든
같은 인생을 살지만
다른 인생을 살아낸다
마치 다른 종족(種族)인 것처럼
마치 다른 기원(起源)에서 온 것처럼
마치 다른 결과(結果)로 가는 것처럼.
이 ‘차이’의 연유(緣由)를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푸느냐에 따라
주장(主張)과
증언(證言)과
지혜(智慧)와
지식(知識)과
종교(宗敎)와
진리(眞理)와
진실(眞實)의
파벌이 나뉜다.
하지만
같은 하늘 아래
같은 하늘 안만 살아가는 한
차원이 다른 사람은 없다.
그 어떠한 귀인(貴人)도
기인(奇人)도
괴인(怪人)도
광인(狂人)도
그 어떠한 천재(天才)도
천재(天災)도
천치(天癡)도
천왕(天王)도
‘천외천’의 사람은 없다.
무한과 같은 차이도
영원과 같은 차이도
무한이 아니고
영원이 아니다.
그저 그런 것 같이
보이고
느껴지고
여겨지는 것 뿐이다.
사람이 영혼(靈魂)이 있고
그 영혼이
물리(物理)와 상관 없이
계속 있는다면
‘천하’(天下)
‘천내’(天內)
‘차이’의 역사의 종언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이 때
여전히 ‘차이’를 누리고 싶다면
‘천상’(天上)
‘천외’(天外)의 삶을 누려야 한다.
비유도 아니고
은유도 아니고
미사여구도 아니고
문자 그대로
‘천외천’의 사람이어야 한다.
천외천의 시간
천외천의 공간
천외천의 육신
천외천의 정신
이를 위해서는
천외천의 종족이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천외천이 기원이여야 하며
천외천이 결과여야만 한다.
허나
저(低)차원이
고(高)차원을
넘나들 수 없듯
천내의 존재가
천외에 넘나들 수 없다.
천내의 존재가
천외에 넘나들기 위해서는
천외의 존재가
천내의 존재에게
천외의 존재를
알려주고
천외로
불러야 한다.
허나
천내의 존재는
스스로
천외를
넘나들 수 없기에
천내와
천외를
잇는 존재가 필요하다.
천내와
천외가
‘접속’(接屬)되는 데에
차원의 차이로 인한
‘불화’(不和)가 일어나지 않도록
서로를 담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완전(完全)한 천내의 존재이며
완전(完全)한 천외의 존재가 필요하다.
이 존재가 단 하나라면
천내의 존재가
천외에 넘나들기 위해서는
이 존재의 인도(引導)를
순(順)순히
좇는 것 이외에
방도(方道)가 없다.
이 존재가 곧
천외천으로의
유일(唯一)한
초대(招待)인 셈이다.
그럼
천외천의 사람이 되고
천외천의 생활(生活)을 하는 것은
이 존재가 나에게 왔을 때
영접(迎接)하고
그가 인도하는 길이
난해(難解)하고
난관(難關)이어도
신뢰(信賴)하며
끝까지
동행(同行)하는 것이다.
그 이외에는
길이 없다. (ɔ)木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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